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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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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석유가격이 심상찮은 하락세에 있다. 올해에만 약 40% 이상 하락해 배럴 당 5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30달러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40여년을 고유가 걱정 속에 살아온 우리나라가 저유가 폐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 10% 하락으로 0.3%대의 성장촉진효과와 물가하락, 가계실질소득 증대가 예상된다. 총체적으로 연간 2,000억달러의 석유를 수입하는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은 틀림없다. 디플레 위험이 없다면 국내총생산(GDP)을 2~3%포인트 정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점점 약해진다. 수출제약, 엔화 약세, 디플레 우려 등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저유가는 가계복지에는 도움이 되나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부정적이다. 필자가 속한 국제에너지 전문가그룹에서는 오래 전부터 유가 70~80달러를 적정 균형가격으로 보아왔다. 기술진보와 시장여건을 동시에 고려하고, 확인매장량, 석유시장의 구조적 실패요인, 각국 정부 등 이해당사자들의 비정상적 행동양태의 한계를 감안한 실질가격이다. 따라서 이보다 높으면 시장실패에 따른 거품으로 본다. 이런 논리는 현실에서 검증된다. 미국 셰일가스의 경제성은 대략 이 수준에서 확보된다.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대부분과 사회비용을 고려한 원자력발전의 경제성 확보도 마찬가지다. 결국 유가 80달러 수준은 ‘넘지 말아야 하는’ 금단의 영역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석유시장 구조변화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다. 단기 시장상황을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미래상황으로 연장하고, 이를 ‘진리’로 믿는 학계의 관행 때문이다. 시장분석에서 기술적인 검토를 배제했고, 심지어 석유 등 화석연료의 가채(可採) 매장량이 저가격 시대에도 기술혁신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조차 외면했다. 국제적 상식으로 통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화석에너지시대 100년 연장 가능성 역시 우리 에너지 전략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영혼 없는’ 분석의 한계이자 에너지 지식시장의 쇄국(鎖國)현상이다. 이를 종합할 때 유가는 장기 지속가능한 정상수준(80달러 수준)에 정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기 급변상황의 가능성은 있지만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여건에서는 크게 바뀔 가능성이 적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급변의 공포를 딛고 에너지비용 최소화를 위한 ‘화석연료시대 100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먼저 국내 석유ㆍ가스산업의 개혁이다. 이들은 자원고갈 공포에 따른 과잉투자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단일품목 수출 1위를 기록했던 정유산업은 전형적 불황산업이 됐다. 석유화학 분야는 중국수출 한계로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가스산업도 해외투자 실패로 고초를 겪고 있다. 이런 실패는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은 시장경제의 ‘망각’ 수준에 반비례 한다는 논리를 무시한 방만 경영의 결과다. 남북분단 상황에다 일본, 중국 등 인접국과의 에너지 네트워크가 없는 우리의 에너지자립은 결국 제품자립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준공공독점, 영역독점에 길들여져 환경변화 감지능력을 상실한 산업에 대한 과감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해 소비를 진작하고, 국가에너지 전략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민생복지 위주의 저유가시대를 열 수 있다. 둘째 대체에너지 개발전략을 보급위주에서 장기 기술개발로 바꿔야 한다. 원자력 개혁도 마찬가지다. 셋째 해외자원개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단기 물량확보 전략에서 탈피해 국내 도입이 가능한 프로젝트만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축, 유통, 거래 등 물류인프라 확충과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민간기업의 자발적 해외투자 지원을 위한 관련 서비스산업이 확보돼야 한다. 넷째 에너지전략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50년 가까이 석유 대체는 에너지전략의 핵심이었고, 인적ㆍ물적 자원과 산업인프라도 여기에 집중돼 왔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국정과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선진국으로의 완전 진입에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번 저유가 사태가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기련 아주대 명예교수 [2014.12.18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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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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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이후의 거대한 사회 변화 중 하나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다. 한 여성이 생애 전체에 걸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01년에 1.3명 이하로 떨어진 이래 상승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지난 2008년 10%를 넘어선 이후 2026년에는 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2004년 이후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다. 불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의 공식 입장이 출산억제였음을 기억하면, 과연 ‘다이내믹 코리아’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출산율 수준이 너무 낮다는 인식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의 출산율이 적정한 수준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출산율이 지금 올라가면, 미래에 생산 가능 인구가 증가하여 국민 연금 등 국가 재정 부담이 완화될 것이다. 한편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인구의 증가는 1인당 소득 수준을 낮추게 될 것이다. 즉, 출생아 수가 증가하면, 경쟁으로 인해 이들이 대학가기도 어려워지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출산 장려해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장려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한 논문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국 버클리 대학의 로날드 리 교수와 하와이 대학의 앤드류 메이슨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전 세계 40개 국가에 대해 적정 출산율을 추정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적정출산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정부의 재정능력을 위해서는 2.07명, 경제 전체의 부양능력을 위해서는 2.04명, 그리고 1인당 소비수준을 위해서는 1.25~1.55명 수준이 적정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 결과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 수준은 어느 기준으로 보나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출산장려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약 합계출산율이 상승하여 1.7명 수준에 이른다면, 우리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경제의 부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산을 장려해야 하고, 1인당 소비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산을 억제해야 한다.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정책의 방향은 국민의 정치적인 선택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출산장려 또는 억제라는 목표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저출산 대책으로 시행되는 많은 정책이 과연 출산장려를 위한 것인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재정부담의 책임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던 보육지원정책은 대표적인 저출산 대책으로 분류된다. 출산율이 증가하면, 정부는 보육지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육아휴직지원 등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기 위한 많은 정책 역시 출산율 수준에 따라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인가? 과거 출산억제정책의 일환으로 여성에게 가구주가 될 권리, 평등한 상속권 등을 보장하도록 가족법을 개정했다. 높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남아선호사상이 지목됐고, 이를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가족법을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은 출산율 수준이 아니라 남녀평등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가족법은 개정됐다. 멀지 않은 훗날 과연 우리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보육을 지원하고 육아휴직을 도입해야 했는지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2014.12.17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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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술잔을 든 채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건배사 듣는 자리다. 주례사가 길면 살짝 빠져나가거나 잡담이라도 하련만 센스 없는 건배사는 ‘극기 훈련장’으로 데려가기 일쑤다. 동의하지 않아도 맞장구를 쳐주는 게 예절이고 관행이다. 주로 선배나 상사가 건배를 제의하기 때문이다. 비공개 원칙이지만 평가항목은 네 가지. 간결하고 새로우면서 재미와 의미가 곁들여지면 좋다. 진부한데 해설까지 길게 곁들이면 최악이다. 건배사를 소재로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이 쓴 칼럼을 읽었다. ‘통통통’ 선창하면 ‘쾌쾌쾌’ 화답한다는 내용이다.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그리고 유쾌, 상쾌, 통쾌. 주문(?)만 외워도 뭔가 뻥 뚫릴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2014년 송년회식 자리의 술맛은 좀 개운치가 않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일이 마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의 간극 같아서다. 누군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눈앞에 펼쳐진 오늘은 빛바랜 졸업앨범 비슷해서일까. 대학은 종강을 맞았다. 느닷없이 칠판에 通이라고 쓰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통. 잘 읽는다. 소통, 형통, 대통 모두 ‘통할 통(通)’이다. 건배사로 제격이다. 이번엔 統을 썼다. 역시 맞힌다. 통일, 통솔, 통합 모두 ‘큰 줄기 통(統)’이다. 건배사로 쓰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은 痛이다. 못 맞힐 리 없다. 두통, 치통, 복통. 고통의 형제들 항렬은 가지런하다. 자, 지금부터 퀴즈다. ‘통쾌하다’고 말할 때 이 셋(通, 統, 痛) 중 어떤 ‘통’을 써야 어울릴까. 이번엔 정답비율이 높지 않다. 痛快가 맞는데 通快나 統快라고 유추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해석을 곁들이는 건 선생의 직분이다. “통쾌해지려면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 통해서, 한통속이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견뎌야 할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즐거움이 크다는 얘기다. 불행은 행복의 맞은편에 있지 않다. 같은 선상에 있다. 불행의 마지막 정거장이 행복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중간에 내려버린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학생들의 표정에 어둠이 깔린다. 마지막 ‘건배사’가 너무 길었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도는 모양이다. 미국 CIA 고문이 충격적이었다면 한국 청년들이 겪는 희망고문은 비극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희망을 이야기하니 듣기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칠판 글씨를 지우는 선생도 적잖이 뜨끔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4.12.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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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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