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의 닭장처럼 된 것은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한 때는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나 삼 십 여년이 지난 이제는 일부 초고급 아파트를 빼고는 이런 살림살이가 편하니까 그게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면 탈출하고픈 심사를 배양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참지 못하여서인지 나는 오십 줄에 접어든 지금까지 “집 위에 집 있고, 집 옆에 집 있고, 집 밑에 집 있는” 아파트에서 산 경험이 채 반 년도 안 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에 살면서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집 위에 하늘 있고, 집 옆에 나무 있고, 집 밑에 땅이 있는 곳”에서 살 것을 갈망하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불편함과 대가를 지불하고 그 꿈을 이루었다.
시골 비슷한 교외에 살면서 느낀 것이 “똥”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내가 사는 곳이 서울 사람들 깨끗한 물마시라고 설정한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규제가 매우 심하고 특히 “똥”의 처리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썩혀서 퇴비로 쓰면 최상급 유기농 자양분이 되는데 편하고 깨끗하자고 전기 써서 물 끌어들여 그 물로 씻어낸다. 그리고 나서는 물이 더러워진다고 한 곳에 모아서 다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며 정화 시킨다고 난리들이다. 물론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생긴 공해는 어찌할 것인가에 무심 일변도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최근 들어, 살면서 가장 보람차고 뿌듯한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녹색평론>에서 번역 출판한 <땅 살리기, 똥 살리기>라는 책을 일독하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예전 나 어릴 적에는 요강이라는 이동식 변기가 시체말로 집집마다 “당근”이었다.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기 전이라 야밤중에 귀신 나온다는 <푸세식> 전통 화장실은 어린이들이나 노약자에게는 기피대상이었다. 물론 풍겨 나오는 은은한 “고향의 냄새”를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젠킨스(Jenkins)라는 미국 펜실바니아 주에 사는 한 건축 수리업자겸 자영농이 한국의 전통 요강을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변환시켜 나를 이토록 가슴 벅찬 뿌듯함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알고 보니 너무도 간단한 원리였다. 요강대신 20리터 정도의 양동이를 좌식변기 덮개가 얹힌 상자 안에 넣고 일을 본 뒤 냄새가 안 나게 톱밥이나 왕겨 혹은 재 등으로 덮는 것이다. 양동이가 차면 건초나 마른 나뭇잎 혹은 톱밥 등을 쌓아 놓은 퇴비 작업장에 풀로 덮어 놓으면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처리해준다. 일 년 뒤면 갈색 황금인 퇴비가 나온다. 냄새가 나지 않나하는 질문을 당연히 받는다. 내 답은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수세식만큼만 납니다.” 궁금한 분들은 앞의 책을 일독하시든가 혹은 www.jenkinspublishing.com을 방문하시라. 앎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래도 사는 것이 조금은 덜 부끄러워질 것이다. 편하게 아파트에 사는 대다수의 동시대인에게 불편하지만 행복한 잘난 척을 한 것 너른 이해 바란다.
(아주대 학보 2004.9.20 시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