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성격이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사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 있다. 테레사 수녀처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사랑과 헌신으로 남을 대하는 사람이 있고 의심과 질시, 증오와 폭력으로 똘똘 뭉친 히틀러 같은 사람도 있다. 성격은 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운명, 더 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사람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뇌이다. 1천300~1천400g 정도의 무게에 1천억 개 정도의 뇌세포로 이루어져있는 인간의 뇌는 감정과 이성, 기억과 판단, 의식과 꿈, 상상력 등 모든 인간적 특성을 결정짓는 중추기관으로 영혼, 혹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뇌는 단단한 두개골 속에 들어있어 열어보기가 쉽지 않고 1800년대 말에 이탈리아의 골기가 질산은을 이용한 염색법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현미경 관찰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즉 뇌신경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의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늦은 1900년 이후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 뇌신경과학에서 거둔 연구업적은 놀랄만한 것이어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노벨 의학상 수상자의 30%가 이 분야에서 배출되었다. 인류가 지난 10년간 뇌에 대하여 알게 된 지식은 지난 100년간 혹은 지난 1천년간의 지식보다 많은 것이다. 역사 상 모든 뇌 연구자의 90%가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들이다. 그만큼 뇌신경과학은 젊은 학문이고 가장 눈부시게 발전하는 학문이다.
-뇌관련 질환 연구 눈부신 속도로 발전
1990 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1999년까지 10년간을 “뇌의 10년(the Decade of the Brain)”으로 선포하고 집중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였다. 미국 정부가 앞장서서 뇌신경과학 연구를 독려한 이유는 알쯔하이머 병을 비롯한 각종 치매,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 자폐증, 정신분열병, 조울병, 간질, 중풍 등 650여 가지의 뇌 관련 질환으로 해마다 5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한 보건의료비 부담은 다른 모든 질병으로 인한 부담금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뇌의 10년”을 계기로 뇌신경과학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생화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뇌영상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뇌신경과학은 유전공학과 더불어 미래에 가장 각광을 받을 분야로 손꼽히고 있으며 물리학, 화학과 같은 인접 자연과학뿐 아니라 정보이론, 인공지능, 인지과학 등 공학, 인문사회과학과도 연계되어 산업혁명, 정보혁명에 이어 제 3의 혁명으로 불리는 '두뇌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뇌신경과학 발전이 타분야 연구까지 영향끼쳐
PET 스캔 같은 영상장치를 이용하여 과학자들은 뇌의 활동을 시각화할 수 있으며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고 있다. 전두엽 절제술을 통해 난폭하고 충동적인 사람을 유순하게 만들 수 있다. 쥐의 뇌 속으로 가느다란 전극을 집어넣어 편도체라는 부위에 반복적인 전기자극을 가하면 어느 순간 고양이에게 달려드는 공격적 행동을 나타낸다. 또한 1960년대 중반 Marian Diamond는 뇌의 구조가 환경에 반응하여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경가소성(neural plasticity)라고 부르는 이 개념은 인간의 뇌가 일상생활의 여러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그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켜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개념을 좀 더 발전시켜서 심리학자 Craig Ramsey는 생후 수 주 내지 수개월 이내에 실시되는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지능(IQ)을 15~30점정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밝혀내었다. 그는 국가 주도로 어린이들을 위한 두뇌발달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빈곤층 아이들이 적절한 외부 자극을 받지 못해 지능이 낮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한 UCLA 의대의 Harry Chugani와 Michael Phelps는 우리의 뇌가 어떤 특정 능력을 어떤 특정시기에 더 잘 학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예민한 시기(sensitive periods)” 혹은 “기회의 창(windows of opportunity)”라고 부르는데, 예를 들어 태어나면서부터 백내장이나 기타 원인 때문에 외부로부터 시각자극을 받지 못한 아이는 시각자극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뇌세포가 위축되어버리고 생후 3년 이내에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앞을 못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태어나면서부터 듣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데 사용되는 5만개의 신경세포 경로가 활동을 하지 않게 되며 열 살이 될 때까지 이 활동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영영 언어구사능력을 잃게 된다. 제2외국어의 경우 성인이 되어도 습득할 수 있지만 10세 이전에 배워야 좀 더 빨리,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는 교육계에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뇌신경 과학은 인간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잠재력 파괴력 지닌 학문
생 화학적 분야에서의 연구는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각종 약물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행복해지는 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프로작'은 우울한 기분을 호전시킬 뿐 아니라 남들 앞에서 자꾸 긴장하고 위축되는 사회공포증이나 똑같은 행동이나 생각을 한없이 반복하는 강박신경증에도 탁월한 치료효과를 갖고 있다. '리탈린'은 산만하고 부산한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어 주고 '리치움'은 조울병에 걸려 들뜨고 흥분한 사람을 차분하게 해준다. 앞으로는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 기억력과 판단력 혹은 상상력을 증진시켜주는 약도 개발될 것이다.
유전학적 연구나 신경생화학적 연구를 통해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사람을 미리 알아내고 예방하기 위한 연구, 그리고 공격성이나 약물중독, 성범죄 등에 취약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연구는 궁극적으로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뇌세포 성형술, 극미세 뉴로칩 삽입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간의 성격을 영구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선한 심성을 갖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상낙원(?)’의 실현으로 이어질지 혹은 일인독재자에 의한 전 인류의 기계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잠재력, 혹은 파괴력을 갖고 있음은 확실하다.
-뇌연구는 영혼의 연구
윤리의식, 책임감, 소명의식 요구
오 늘날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것과 같으며 인류문명이 시작 된 이후 수많은 철학자나 신학자, 사회학자들이 고민해 왔던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뛰어난 상상력과 끈질긴 탐구정신을 갖춘 인재들이 도전해 볼만한 분야이지만 동시에 매우 엄격한 윤리의식, 인간과 역사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아주대학교 종합정보지 인간존중 2004.9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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