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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자신의 한계를 규정해 본 적 없다

NEW 자신의 한계를 규정해 본 적 없다

  • 관리자
  • 2008-07-16
  • 60629
50원 한 번 넣고 6시간동안 갤러그 한 사람,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로 쇼팽 곡을 연주하고 독주회까지 연 사람,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10년 동안 이어폰을 꽂고 다녀 귓병이 난 사람,

어느 여름방학 두 달 동안 하루에 한 끼 자장면을 먹으며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


  그는 과학도들의 선망의 일터 중의 하나인 미국 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고 있는 양의혁(67년생) 박사다. 위에 나열한 에피소드들은 양 박사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주대학교 제어계측학과(현 전자공학부)에 입학하여 석․박사과정까지 10년간 원천골 캠퍼스에 머물었던 토종 아주인이다. 현재 그는 정확하게 NASA 산하에 있는 수십 개의 연구소 중 지난 7월 우주탐사선 딥임팩트가 인류최초로 혜성과 충돌하는 우주쇼 연출을 주도한 젯트추진연구소(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에 근무하고 있다. 양 박사가 그 곳에서 하는 일은 우주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거대한 반사망원경 제작에 관여되는 프로젝트들이다. “우주너머의 별들을 관측하는 망원경의 렌즈 크기는 보통 30M에서 100M정도의 크기지요. 그 엄청난 크기의 렌즈는 수 천개의 거울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MEMS기술을 적용하여 이 조각들이 관찰자들의 의도대로 일사불란 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포탈사이트에 ‘NASA에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댓글이 ‘국내에서 고등학교는 어디, 대학은 어디 그리고 대학원은 미국에서 공부해야지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고 하니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NASA에 한국 국적을 가진 시니어매니저는 저 뿐 일거예요. 젯트추진연구소에 5천500여명의 직원이 있는데, 그 중 한국인이 3,40명 정도예요.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경우이고, 한국에서 소위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공부를 마치고 박사후 과정으로 일하고 있는 2명이 4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정식연구원이 되지 못할 정도로 경쟁이 심한 곳입니다.”


  양 박사는 NASA 입성이 결정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동경대 Fujita MEMS Research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던 중 채 1년이 되지 않아 한 국제학회에서 NASA JPL(젯트추진연구소)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헤어진 후 제 이력서를 보냈어요. 아무런 답변이 없더군요. 1년 반 즈음 지나 미국에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타진하던 차에 NASA에도 다시 연락을 해봤죠. 반갑게 전화를 받으면서 ‘1년 전에 보내준 내 이력이 인상적이었다’며 인터뷰를 주선해주었어요. 여러 차례 전화로 인터뷰도 하고 학회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NASA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신원조회만도 6개월이 걸렸을 겁니다.” 양 박사는 NASA에서 지금의 입지를 다지기까지는 입성보다 더 힘이 들었다 회고했다. 임시연구원으로 시작한 NASA에서의 생활은 1년 뒤 바로 해고에 처할 위기에까지 놓였으나, 100:1의 경쟁률을 제치고 그의 Proposal이 선정되면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 이후 계속되는 Proposal 선정으로 2년 만에 정식연구원이 되었다. 그 뒤 그는 프로젝트 능력을 인정을 받아 보통 6년에서 길게 10년 걸려 오르는 시니어매니저를 2년 만에 획득했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우선이었겠죠. 또한 나의 능력을 검증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세계에 진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동안 무척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실력이 중요한거죠.”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대학생활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말고 꿈을 크게 가져라’ ‘목표가 정해지면 포기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부류는 보통 두 종류죠. 공부를 잘하고 연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졸업 후 특별히 하고자 하는 일이 없는 사람, 전 후자였죠. 하지만 내 능력에 한계를 지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양 박사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양상식(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의 권유로 당시 우리나라에 막 소개된 MEMS(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공부가 재미있어 정신없이 공부’했다는 양 박사는 결국 MEMS 국내 1호박사가 되었고, 이후 자신의 꿈을 세계무대로 옮겨놓았고, 지금도 쉼없이자신의 더 큰 꿈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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